聖書箇所;エペソ人への手紙4章30節~32節
メッセージ題目;「赦し」
メッセンジャー;キム・サムエル牧師(クァンミョン教会副牧師)
シャローム! お会いできてうれしいです。
샬롬 반갑습니다.
私は、韓国の議政府(ウィジョンブ)にある光明(クァンミョン)教会から日本に派遣された祈祷宣教チームのリーダーを拝命しております、キム・サムエルと申します。私とともに、8人からなるチームがともに来日しました。いま特別賛美をおささげした、お美しい姉妹たちです。
저는 대한민국 의정부에 있는 광명교회에서 온 기도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김삼열 목사라고 합니다. 저와 함께 8명의 기도팀이 함께 왔습니다. 방금 특송한 아름다운 자매님들이십니다.
私どものチームは、神さまの全面的な恵みとお導きのうちに、こちら水戸第一聖書バプテスト教会に到着し、一週間にわたって教会と水戸市内にて、茨城のために熱くお祈りしました。
저희 팀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인도하심 가운데 이곳 미토제일성서침례교회에 도착하여 한 주간 교회와 미토시 나아가 이바라키현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私どものことをみなさまの教会までお導きくださり、聖霊を注いでくださり、お祈りさせてくださった神さまに、感謝と賛美をおささげします。
저희들을 이곳 교회까지 인도해주시고 성령을 부어주셔서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本日は、いまお読みいただいたエペソ人への手紙の本文を中心に、「赦し」についてみことばをお分かち合いしたいと思います。
오늘은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본문을 중심으로 용서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今から2か月前、私どものチームが結成され、神さまが私どもにまず最初にくださったお祈りの課題がありました。それは、日本に対し、もしかして自分たちに残っているかもしれない、憎しみの感情があればそれを捨てなさい、ということでした。
지금으로부터 2달 전 저희 기도팀이 결성되고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제일 먼저 주신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에 대해 혹시 우리에게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미움과 증오의 감정을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聖徒のみなさまは、日本と韓国の間の過去の歴史をよくご存じのことと思います。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일본과 한국의 지난 역사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韓国が日本の支配から独立する前、つまり日本が第二次世界大戦に敗戦する前の足かけ36年の歴史は、韓国人にはあまりにつらい記憶です。
한국이 일제치하에서 독립하기 이전, 즉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기 이전 36년 동안의 역사가 한국인들에게는 뼈아픈 기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たとえクリスチャンであったとしても、日本の教会を愛して祈祷宣教に行こうと心に決めても、韓国人として韓国の地に生まれたからには、その記憶から完全に自由になることはできません。
비록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일본의 교회를 사랑해서 기도선교를 가기로 작정했어도 한국인으로 한국땅에 태어났기에 그 기억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韓国人であるならば、だれであれ、日本に対してよくない感情を持ちうるものです。
한국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일본에 대해서 안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それは私からしてそうでした。
저부터 시작해서 말이죠.
それで、私どもがまず最初に祈ったことは、ほかならぬ私どもから、日本を完全に赦そうということでした。日本の教会と日本を祝福しに行く私どもが、愛する心と憎む心を同時に持っていくことはできないからです。
그래서 저희가 했던 첫번째 기도가 바로 우리부터 일본을 완전히 용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교회와 일본을 축복하러 가는 우리가 사랑의 마음과 미움의 마음을 둘 다 동시에 가지고 갈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日本に向けて抱いていたたったひとつの憎しみに至るまで主にお委ねできるように、切に祈りました。
일본을 향해 남아 있던 단 하나의 미움까지 내려놓기를 간구했습니다.
日本に向けて残していたたったひとつの憎しみに至るまで捨てられるように、主の恵みを慕い求めました。
일본을 향해 남아 있던 단 하나의 증오까지 버리기를 사모했습니다.
そして、日本の教会と日本に向けた愛だけによって心とたましいが満たされるように、切に祈りました。
그리고 일본교회와 일본를 향한 사랑만으로 심령이 채워지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日本を完全に赦し、愛と祝福だけで心とたましいが満たされること。
일본을 완전히 용서하고 사랑과 축복만으로 심령을 채우는 것.
これこそが、私どものチームがまず最初にしたことでした。
이것이 바로 저희 팀이 맨 먼저 했던 작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미토제일성서침례교회 성도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愛する水戸第一聖書バプテスト教会のみなさま、心に留めていただきたいのです。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
憎むのではなく、赦すこと。
증오하며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하는 것.
憎んで呪うのではなく、祝福すること。
이것은 저와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これが私たちに向けられた、神さまのみこころです。
용서하고 축복하는 것, 이것들은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赦し、祝福すること、それは厳密に言えば、神さまのためにす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神さまのためではなく、私たちのためにすることです。
에베소서 4장 30절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エペソ人への手紙4章30節は、このように語っています。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고 말입니다.
「神の聖霊を悲しませてはいけません。」
비록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성경은 4장 25절부터 32절까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お読みいただきませんでしたが、聖書は4章25節から32節まで、神の聖霊を悲しませるわれわれの生き方について語っています。
거짓, 분을 내는 것, 도둑질, 더러운 말을 입밖에 내는 것,
偽ること、怒ること、盗むこと、悪いことばを口にすること。
모든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
無慈悲、憤り、怒り、怒号、ののしり。
이런 것들을 행하면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근심하신다는 것입니다.
こういったことをするなら、私たちのうちにおられる聖霊が悲しまれるというわけです。
그리고 3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そして、32節にはこう書いてあります。ともにお読みしましょう。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互いに親切にし、優しい心で赦し合いなさい。神も、キリストにおいてあなたがたを赦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
성경은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聖書は、赦しなさいと語っています。
이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문맥의 흐름상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근심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これは逆に考えると、文脈の流れから、私たちが赦さないならば神の聖霊が悲しまれるということを意味していることになります。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해를 가한 다른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そうです。私たちが、自分のことを傷つけた誰かのことを赦さないならば、神の聖霊は悲しまれます。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이 근심하시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聖徒のみなさま、神の聖霊が悲しまれる理由は、ほかでもありません。
우리 안에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증오를 가지고 있으면, 내 안에 있는 미움과 증오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私たちがだれかのことを赦さないならば、だれかに対する憎しみを持っているならば、自分の中にあるその憎しみが、ほかのだれかではない、自分自身を殺すからです。
본문에 나오는 용서를 헬라어로 아피에미라고 합니다.
本文に出てくる「赦し」は、ギリシャ語で「アフィエーミ」といいます。
이 단어는 ‘놓아주다, 보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これは「解放してやる、送る」という意味を持っています。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설명하자면 이렇게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赦さないという心を説明するならば、このように言う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여러분, 밤송이를 잘 아실 겁니다.
みなさん、栗のいがをよくご存じだと思います。
밤송이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どんな形をしていますか?
밤송이 하나에 2개에서 5개 정도의 밤이 들어가 있는데요.
ひとつのいがに2つから5つほどの栗の実が入っています。
겉은 가시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밤송이 하나가 이렇게 생겼습니다.
外はとげとげに覆われています。いがはそのようにできています。
그런데 문제는요 밤을 너무 좋아해서 밤을 먹겠다고 밤송이를 손에 꽉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しかし問題は、栗があまりに好きで、栗を食べようとして、いがごとぎゅっと握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성도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聖徒のみなさま、考えてみてください。
밤송이를 좋아해서 밤을 먹겠다고 밤송이를 꽉 쥐고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栗が好きで、それを食べようと、いがごとぎゅっと握るなら、どうなりますか?
아마 손에 꽉 쥔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たぶん、握ったそばから1分もしないで、手から血がたらたら流れだすでしょう。
시간이 지날수록 손바닥에 통증은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時間がたてばたつほど、手の痛みはどんどんひどくなるでしょう。
그런데도 손바닥을 펴서 밤송이를 놓아주지를 못합니다.
なのに、手を開いていがを離すことができません。
밤송이 생각에 온 마음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栗のいがのことで心がいっぱいになっているからです。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의 심령이 이와 같습니다.
だれかのことを赦せない人の心は、このようです。
밤송이 생각에 온 마음이 사로잡혀서 쉽게 손바닥을 펴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 역시 미움과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미움의 감정을 놓지 못합니다.
栗のいがに心が捕らわれていて、簡単には手を開けない人のように、憎しみと怒りの感情に捕らわれ、それを手離すことができないでいます。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問題はここから生じます。
마치 밤송이가 쥐고 있는 사람을 심하게 아프게 하는 것처럼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 그 감정들을 붙잡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아프게 한다는 것입니다.
ちょうど、栗のいががそれを握っている人に痛みを与えるように、憎しみと怒りの感情に捕らわれているならば、その人の心は病み、痛みます。
미움과 분노는 사람을 갑자기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憎しみと怒りは、人に対してすぐに痛みを与えることはありません。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아프게 합니다.
自分も知らないうちに、だんだんと痛んできます。
시간이 지나 사람의 심령을 병들게 합니다.
時間が経つにつれ、人の心とたましいを病ませていきます。
분노 조절 장애나 우울증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怒りのコントロールができなかったり、鬱になったりというのが代表的なケースです。
성도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聖徒のみなさま、心に留めていただきたいのです。
미움과 증오는 우리를 죽입니다. 용서해야 우리가 삽니다.
憎しみと怒りは私たちを殺します。赦すなら私たちは生きます。
그래서 용서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ですから赦しは、私たちのためのものです。ほかのだれかのためではありません。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ほかでもない、自分のためのものです。
이것이 하나님의 성령이 근심하시는 이유입니다.
これが、神の聖霊を悲しませる理由です。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聖徒のみなさま、神さまは私たちのことを、とても愛していらっしゃいます。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아들 예수를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私たちに向けられた神さまの愛は、その御子イエスさまを、私たちの罪の身代わりに十字架におつけになったほどのものでした。
원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가 죽었어야 하는 자리인데 아들 예수님을 대신 죽게 하신 것입니다.
ほんとうなら、私たちが罪のために死な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に、御子イエスさまが身代わりに死んでくださったのでした。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아들을 희생해서라도 우리를 죄악으로 인한 영원한 죽음에서 살리고자 하신 것입니다.
私たちのことを愛されるあまり、ご自身の御子を犠牲にされてでも、
성도 여러분,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聖徒のみなさま、必ず心に留めておいてください。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었습니다.
御子イエスさまの血は、私たちの罪を洗いました。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イエスさまが十字架で流された血により、私たちは罪の赦しをいただきました。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는 속죄함, 즉 용서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イエスさまの十字架から流れる血により、私たちは罪からの贖い、すなわち赦しをいただきました。
ハレル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なのに、神の聖霊は悲しまれます。
왜 그렇습니까?
なぜでしょうか?
예수님의 피값으로 죄 용서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함으로 우리의 심령을 병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イエスさまの血の価により罪の赦しの恵みをいただいた私たちが、ほかのだれかのことを赦すことができないことのゆえに、私たちのたましいを病ませているからです。
죄 용서를 받아 살아난 우리가 용서하지 못함을 통해 우리 자신을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罪の赦しをいただいて生きるものとなった私たちが、赦すことができないことによって、私たち自身を殺しているからです。
이런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실리는 만무합니다.
このような私たちの姿を、神さまがお喜びになることは金輪際ありません。
자녀가 자신을 병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지켜보는 부모는 없기 때문입니다.
子どもが自分のことを痛めつけ、病ませているのを、ただ何とも思わないで見ているだけの親はいないのと同じことです。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보며 분명 이렇게 심히 걱정하시며 말씀하실 것입니다.
私たちがほかのだれかのことを赦せないとき、神さまはそのような私たちのことをご覧になって、間違いなくひどく心配され、お語りになるでしょう。
‘재 저러면 안될텐데, 저렇게 미워하고 증오를 버리지 않으면 결국엔 자기가 다칠 건데… 자기가 아플 건데…. 언제 미움과 증오를 놓아 주겠노!’ 라고 말입니다.
「それじゃだめじゃないか。そんなふうに憎むことをやめないなら、傷つくのは自分だよ。痛むのは自分だよ。いつになったら憎むことをやめてくれるのか!」
그렇습니다.
そうです。
용서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赦しは自分のためのものです。
용서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赦しは、あなたを愛しておられる神さまのみこころです。
그래서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쥐고 있던 다른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증오를 놓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ですから私たちは、自分自身のために、自分が握っている感情、ほかの人のことを憎む心を手離す必要があります。これこそが赦しです。
그런데 오늘 설교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しかし、今日のメッセージで最も大事な点は、これからお語りすることです。
미움과 증오를 놓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憎しみを手離すことは、思うよりも簡単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